중등생 1인당 지출 2010년 이후 제자리…교사 결원·노후 시설에 불만 폭발
과격 시위에 체포자 5천명 넘어서…정부는 재정악화에 해법 '딜레마'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프랑스에서 낡은 학교시설과 교사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진 배경에는 10여년간 정체된 정부의 교육비 지출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가 인용한 프랑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의 중등 학생 1인당 평균 교육예산 지출액(2024년 불변가격 기준)은 2010년 1만1천910유로에서 2024년 1만1천660유로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프랑스의 교육 예산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간 수준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1인당 실질 지출액은 오랜 기간 정체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1일 공개한 2027년도 예산안에서도 교육 예산(명목) 증가율은 1.7%에 그쳐 물가 상승률에 못 미쳤다.

지난달 21일 파리 남동부 교외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는 파리 지역으로 번졌다가 지난달 29일부터 전국으로 확산했다.
학생들은 과도한 수업 일정과 과밀한 학급, 만성적인 교사 부족, 노후화한 시설 등을 문제 삼으며 교육 환경 개선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의 불만은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특히 집중된 분위기다.
파리 북부 외곽의 르코르뷔지에 고교 앞 시위에 참여한 학생 마이사(17)는 로이터에 "작년에 국어(프랑스어) 교사 없이 국어 시험을 쳤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공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는 교사 부족으로 개학 이후 수학, 영어, 체육 등 여러 과목 수업이 취소됐다고 학부모 대표는 전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빈곤율이 높은 파리 북부 외곽 센생드니 지역 고교의 3분의 2가 지난 1일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노조 설문 결과 이 지역 학교의 3분의 2가 교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과 교사들은 정부가 2018년 대학 입학 지원 플랫폼(파르쿠르쉬프)을 도입한 이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적인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고 로이터는 소개했다.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대입에서의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비판한다.
파리8대학의 정치학자 윌리스 라바트는 "공공서비스와 공교육이 무너졌을 때 가장 격렬하게 충격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 맨 아래 계층에 있는 이들"이라면서 이번 시위가 소외된 도시 지역이 국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정부의 높은 정부부채 비율과 재정적자는 교육비 지출을 쉽게 늘릴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지난해 5.1%에서 올해 5.4%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일 430억 유로(약 65조원) 규모의 지출 삭감안을 제시했다.
재정 건전성을 도모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학교에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달래면서도 새로운 대규모 지출 약속을 피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이번 시위는 이미 정부의 한 차례 정책 후퇴를 끌어냈다. 정부는 고교 졸업 후 대학·그랑제콜 진학 준비과정에 진학하는 일부 학생에게 등록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내년도 예산안에 넣었으나 학생 시위가 격화하자 이를 철회했다. 이 방안은 시위 참가자의 반발을 키운 정책 중 하나였다.
정부가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시위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로랑 누네즈 내무장관은 2일 프랑스 TF1 방송에 출연해 지난달 28일 이후 학생 시위와 관련해 5천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지난 1일과 2일에만 각각 1천954명, 1천747명이 체포됐다. 체포자 중 약 85%는 미성년자였다.
누네즈 장관은 폭동과 재산 피해, 폭력 행위가 있는 경우 경찰이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노동단체와 학생단체는 정부 압박을 이어가자며 6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 시위는 정치권 갈등으로도 번졌다.
누네즈 장관은 시위 규모가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그 원인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급진주의 진보 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영향을 꼽았다.
에두아르 제프레 교육장관도 "고교생 운동이 극단적 폭력 성향의 소수 집단에 인질로 잡혀 있다"며 시위 격화 배후에 급진주의 세력이 있음을 내비쳤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 하원 의원도 앞서 "이것은 더 이상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아니다. 이는 전문가들이 조직하고 LFI 의원들이 지휘하는 폭동"이라고 말했다.
반면 LFI는 정부가 "음모론에 빠져들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대선 주자이기도 한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는 비폭력 시위를 지지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좌파를 비난하는 건 시위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p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