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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18): 아름다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평등

입력 2026-11-05 07:00  

[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18): 아름다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평등

[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18): 아름다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평등
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필자는 이제껏 대략 500개의 도시를 다녀왔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꼽곤 했다. 케이프타운 한가운데 평평하게 솟은 테이블 마운틴은 어디에서 올려다봐도 그 자리에 있다. 산 위에 오르면 바다와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후도 좋아서 여름은 덥지 않고 겨울도 춥지 않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를 다녔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곳은 케이프타운이 유일했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위치한 남아공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발전한 국가다. 그러나 화려한 풍경 뒤에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불평등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살기 좋은 기후와 비옥한 토양은 남아공이 겪고 있는 불평등의 출발점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케이프에 보급 기지를 세운 뒤 유럽인들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자원 수탈에 중점을 두었던 것과 달리, 남아공에서는 대규모 백인 정착사회가 형성됐다. 좋은 기후와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고, 이후 다이아몬드와 금까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주한 백인들은 영구적으로 터를 마련했고,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남아공에 살고 있다. 현재 남아공 인구의 약 7%가 백인이다.
백인 정착민이 많아지자 토지와 노동을 둘러싼 문제가 생겼고, 백인이 주도한 남아공 정부는 이를 법으로 해결했다. 1913년 원주민 토지법(Natives Land Act)은 인구의 대다수인 흑인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을 전 국토의 7%로 제한했다. 1948년부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이름으로 거주지·학교·직업·결혼까지 인종에 따라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흑인은 도시 외곽에 살면서 백인을 위해 일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종식됐다. 그러나 오랜 세월 쌓인 자산과 교육, 토지의 격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늘날 남아공의 극심한 불평등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남아공은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5년 1인당 국민소득은 6천270달러(약 830만원)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높은 편이지만, 평균 소득이 국민의 실제 삶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아름답게 조성된 케이프타운에서 차로 20분만 가면 양철 지붕이 끝없이 이어진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타운십이 나타난다. 같은 도시 안에 선진국을 연상시키는 부유한 주거지와 기초적인 생활 여건조차 갖추기 어려운 최빈국의 빈곤이 공존하는 것이다.
남아공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한 치안 문제로 이어진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살인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매년 2만명이 넘는 사람이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다. 케이프타운과 요하네스버그 등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을 발견하게 된다. 크고 좋은 집에는 높은 담장과 전기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많은 곳을 여행한 필자도 남아공에서 여행하고 현지 조사를 할 때는 긴장을 풀기가 어려웠다. 남아공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는 현지에 거주하던 필자의 지인이 노트북이 든 가방과 소지품을 모두 도둑맞기도 했다. 거리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개발협력 현장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절대적 빈곤만큼이나 불평등도 개발도상국의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가난한 나라에는 부족한 자원을 지원하고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남아공은 다른 문제를 보여 준다. 필자가 연구해 온 부룬디나 말라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나눌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남아공의 문제는 나눌 것이 있는데 제대로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원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국가의 부가 국민 전체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
1994년 흑인이 주도권을 잡은 남아공 정부 역시 이러한 불평등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 흑인 경제력 강화 정책은 과거 차별받았던 흑인들의 경제적 권리를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 혜택은 일부 흑인 엘리트에게 집중되었고 빈곤층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부패와 저성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충분한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남아공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원 지원을 넘어 토지와 교육, 일자리의 기회를 보다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이다. 이는 선진 공여국의 공적개발원조(ODA)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결국 남아공 정부와 국민이 풀어야 할 과제다.
불평등을 방치한 대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범죄가 늘어나면 부자들은 담을 높이고 경비를 고용하는 데 돈을 쓴다. 해외 투자자는 치안이 불안한 나라를 피하고, 관광객은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도 방문을 망설인다. 투자가 줄고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기 어렵다. 결국 담 안에 사는 사람도 담 밖에 사는 사람도 불평등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남아공에서 필자가 만난 사람들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친절했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사람이 문제는 아니다. 한 세기 넘게 불평등을 조성하고 굳혀 온 시스템이 문제이며, 그 시스템을 충분히 바꾸지 못한 정치가 문제다.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은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산 아래 사람들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은 여전히 다르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이야말로 남아공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다. 케이프타운이 소수에게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되는 날을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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