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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농업을 장려하고 상공업을 억제했던 조선초기…비단은 중국·금은 일본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 2021-12-13 10:00:02
수입됐다. 면화씨는 1364년(공민왕 13)께 한국에 처음 들어왔지만, 1460년대까지 면포는 의류를 만드는 주요 소재가 되지 못했다. 광업 역시 자진 폐업하다시피 했다. 금, 은, 납, 철, 구리, 유황 등이 주요 채굴 광물자원이었지만, 주요 활동은 중국에 조공하기 위한 금과 은을 생산하는 데 집중됐다. 이마저도 “조선에선...
‘태종 이방원’ 임지규, 본방 사수 독려 대본 인증샷 공개 2021-12-10 14:50:04
등장한다. 공민왕이 일으켜 세우려던 고려의 기강을 다시 무너뜨린 장본인으로, 위화도 회군을 한 이성계에 의해 폐위 당하는 인물이다. 10일 소속사를 통해 공개된 사진에서 임지규는 ‘태종 이방원’ 1회 대본을 든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갑옷을 입은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임지규의...
임지규, ‘태종 이방원’ 캐스팅…6년 만에 사극 출연 2021-11-23 12:10:05
왕인 우왕으로 변신한다. 공민왕이 일으켜 세우려던 고려의 기강을 다시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하여 요동정벌을 명하였으나 이성계는 반란을 일으켰고, 우왕은 환관들을 이끌고 이성계의 집을 기습하는 등 최후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폐위당하고 만다. 데뷔 이후 독립 영화들에 출연하며...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금속화폐뿐 아니라 지폐도 가치하락 거듭…원나라 지폐 남발은 고려에도 영향 미쳐 2021-09-06 09:01:08
대외무역 등에 사용했다. 하지만 공민왕 대에 이르면 종잇조각이 된 원보초는 쓸 곳이 없어졌다. 결국 이는 군인들의 봉급으로 ‘땡처리’되거나 관료들로부터 마필을 강제 공출하면서 명목상 대가로 주어지는 형태로 악용됐다. 원나라의 화폐 남발 폐해는 이웃 한반도의 고려 지배층과 일반 백성에게까지 직접적인 흔적을...
'차이나는 클라스' 이익주 교수가 전하는 고려 100년의 폐행 2021-02-25 22:00:00
사랑으로 잘 알려지기도 한 공민왕은 누구보다 고려를 되살리고자 했던 개혁 군주였다. 그는 원과 명나라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펼치고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했다.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신돈의 농단으로 공민왕의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요승 신돈의 개인적인 자질이 문제였던 것일까,...
[천자 칼럼] 1600년 전 바둑돌 2020-12-08 17:47:33
장면(475년)이 기록돼 있다. 《고려사》엔 공민왕이 내기 바둑을 둔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에선 ‘금기서화(琴棋書畵)’라며 바둑을 선비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중 하나로 꼽았고, 부호나 세력가의 후원을 받으며 기량을 갈고닦은 프로 바둑기사 ‘국수(國手)’가 등장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조훈현 9단이 1988년 최초...
[한경에세이] 新청량산유람기 2020-11-10 17:51:53
굵은 글씨의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이라는 설명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도산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청량산에 여러 번 다녀갔다 한다. 풍경은 부는 바람에 계속 딸랑거리고 때맞춰 치는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단풍은 바람 따라 흐르니 낙엽이 꽃비처럼 흩어진다. 조금만 더 가면 하늘다리를 볼 수...
600년 전, 혁명세력들은 왜 서울을 택했나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09-13 08:00:06
했다. 고려는 남경을 건설했고, 1356년(공민왕 5년)에는 천도 후보지로 삼았다. 실제로 한양에 성과 궁궐을 건설하는 시도까지 했다. 승려인 보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면 16개 나라가 조공을 바친다는 도참설을 공민왕에게 주장했다. 조선도 한양을 수도로 선택할 때 풍수지리설을 염두에 뒀다. 개경은 지덕이 쇠패한...
'역성혁명' 조선 건국, 다시보기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09-06 08:00:01
공감했고, 명분도 충분했다. 이에 공민왕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문제는 외부상황이었다.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고, 북원의 침략과 명나라의 간섭은 고려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 홍건적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이었다. 13세기...
멸망의 길 걸은 고려…방도는 없었나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08-30 08:00:01
왜구는 1223년부터 침략을 시작했다. 침략 횟수는 공민왕 20년 동안에만 백여 회가 넘었다. 우왕 당시에는 14년 동안에 378회나 됐다. 14세기 중반에는 원나라에서 한족 농민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붉은 두건을 쓴 홍건적들과 농민반란군이 등장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군에 패배한 홍건적의 잔당들이 만주를 거쳐 고려를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