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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혜경궁'이 기가막혀…200년만에 불명예 사이버 소환 2018-11-21 13:30:08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당파싸움에 휘말리는 건 기본이고 한때는 궁에서 내쳐지기까지 했다. 둘째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 뒤에야 혜경궁이란 궁호를 얻게 된 그는 남편의 무덤을 30여년 만에 찾아가 볼 수 있게 되는 등 모질고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런 자신의 굴곡진 삶을 '한중록(閑中錄)'이라는 회고집에...
220년간 어둠에 묻힌 학자 '이덕리'를 밝힌 추적담 2018-11-16 15:26:50
영조 맏아들이자 사도세자의 이복형이다. 노론의 집중적 견제를 받은 정조가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고려해 어중간한 태도를 취한 셈이다. 하지만 이덕리의 형인 이덕사(李德師)는 그해 4월 1일 정조 친부인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튿날 동소문 밖에서 극형에 처해졌다. 이어 의금부는 4월 3일 이덕사...
[신간] 조선, 철학의 왕국·일 칸들의 역사 2018-11-09 08:12:29
않았다. 호락은 충청도 노론 학자인 호론(湖論)과 서울 노론 학자인 낙론(洛論)을 각각 지칭하는데, 송시열을 계승한 호론이 배타적인 원칙론자였다면 낙론은 다른 사상도 인정하려는 수정론자였다. 저자는 호락논쟁에서 논쟁거리가 크게 세 가지였다면서 "감각이 발동하기 전 마음 상태인 미발(未發)에서 마음의 본질에...
[책마을] "聖人과 凡人, 마음은 같나"…조선 호락논쟁 2018-11-08 18:48:31
학계 주류를 점했던 노론이었다. 충청도 노론학자들은 충청도의 다른 이름인 호서(湖西)를 따 호(湖), 서울 학자들은 낙(洛)으로 불렀다. 중국의 낙양(洛陽)이 수도의 보통명사처럼 쓰였기 때문이다.호락논쟁의 뿌리는 송시열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시열의 제자인 충청도의 권상하와 서울의 김창엽이 각각 ‘호’...
[신간] 위대한 중국학자·정조처럼 소통하라 2018-07-24 14:55:24
편지로 소통한 인물로 유명하다. 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른 노론 벽파 심환지에게도 편지 수백 통을 보냈다. 1797년 4월 10일에 정조가 심환지에게 쓴 편지를 보면 두 사람이 매우 친밀했음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이 떡 먹고 이 말 말아라'라는 속담을 다시금 명심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거나 "경은 과연 생각 없는...
130년전 조선 외교관 눈에 비친 미국은 어땠을까 2018-05-07 11:52:13
돌보아 마음과 몸을 다하여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다." 노론 명문가인 반남박씨 출신 박정양(1841∼1905)은 1887년 고종이 미국에 특파한 전권대신이었다. 그는 이듬해 1월 1일 미국 본토에 도착해 11개월 동안 머물며 보고 느낀 점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온 박정양에게 미국은 만인에게 권리가 있...
[다시 읽는 명저] "상공업 키워야 나라 발전"… 조선판 국부론 2018-01-31 18:16:54
정책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당시 정책으로 수용하기엔 너무 혁신적인 사상이었다.그를 비롯한 실학자들의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념은 성리학을 숭상한 사대부의 벽을 넘기에 한계가 있었다. 박제가는 세력을 잡고 있던 노론 벽파의 미움을 받아 유배길에 올랐다. ‘조선판 국부론’은 사장(死藏)됐다.홍영식...
정조는 '무인(武人)군주'… 조선 최강 군대 키우다 2018-01-18 19:05:17
않은 반면 비용은 어마어마했다. 더욱이 노론이 오군영을 장악한 탓에 왕권을 위협했고, 역모사건도 잇달았다. 정조가 성호 이익의 친위군병 양성론을 받아들여 새로운 호위기구로 장용영을 설치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정조는 장용영을 통해 친위군 강화는 물론 균역법 혁파를 통한 민생 안정, 북벌을 위한 군사력 증강까...
국가 개혁 꿈꿨던 유형원의 저술 엮은 '반계유고' 출간 2018-01-02 09:00:56
해설에서 "반계의 논리는 노론이 주도한 존명반청과 외형상 다르지 않다"면서도 "반계는 당면한 상황을 체제 위기를 넘어서 문명적 위기로 판단한 나머지 근본적 대응책으로 반계수록을 저술했다"고 평가했다. 임 명예교수는 "반계유고는 반계수록과 상보적인 성격을 지닌 책"이라며 "반계의 문집을 아울러 고려하지 않은...
논산명재고택에는 왜 담과 솟을대문이 없을까 2017-12-29 11:30:24
찾는다. 윤증은 집권세력이던 송시열의 노론과 첨예하게 맞섰던 소론의 우두머리였다. 당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던 노성 윤씨 가문의 동태와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노론의 감시에 (담과 대문으로) 숨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채를 과감하게 개방하는 적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