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에서 미국이 중국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내며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의 반중(反中) 노선 동참을 재차 압박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 투톱이 첫 해외 순방지로 한국과 일본을 선택한 이유가 결국 중국을 겨냥한 동맹 결속에 있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격화하는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 정부의 줄타기 외교가 중대 분기점에 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대북 견제 등 지역안보 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일 삼각공조 강화를 강조했다. 또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강경한 대북 압박전략을 구사할 것을 시사했다. 향후 대북정책 조율 과정에서 한·미 동맹의 파열음이 불거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기자회견에 앞서 발표한 공동 성명서에는 ‘중국’이란 단어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생중계 회견에서 중국을 콕 집어 언급하고 ‘반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발언 수위도 끌어올린 것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사전에 의도된 전략일 것”이라며 “한국의 모호한 대중 스탠스에 불만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발언은 사실상 한국이 반중 전선 앞줄에 서달라고 요구한 것이란 분석이다. 양국은 공동 성명서에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간다”는 합의 내용을 담았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쿼드(미·일·호주·인도 4개국 지역안보체제) 동참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회의에서 쿼드와 관련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안보 위협 등을 고려할 때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한·미·일 삼각공조 복원을 위한 선결 과제는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이다. 외교가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한·일 갈등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기자 회견에서 “향후 대북정책에 압박과 외교적 옵션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군사·외교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은 임기 동안 대북정책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한 문재인 정부의 남북 협력 구상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청와대는 이날 공동성명서에 한반도 비핵화 등의 문구가 빠진 것과 관련해 “비핵화에 대해 논의를 안 했다거나 비핵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며 “‘북한에 대해 완전히 조율된 전략을 추진한다’는 (성명서) 표현에 함축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중 관계에 대해서도 미국 측 이해를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블링컨 장관은 한·중 관계에 복잡한 측면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며 “향후 중국 관계에 관해서도 한국과 긴밀히 소통해 나가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정호/하헌형/강영연 기자 dolp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