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수의 법경제학자의 눈]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에 도움이 되려면

입력 2022-08-31 17:33   수정 2022-09-01 00:09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 필자가 종종 듣는 질문이다. 말하자면 장차 AI 판사가 등장해 판결을 내려주지 않을지, AI 의사가 등장해 병을 진단해주지는 않을지에 관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AI 기술 발전에 대한 상당한 기대와 막연한 불안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AI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역할을 AI가 대신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AI가 어떻게 사람을 도와주는 보조적 역할을 충실하게 제공하도록 할 것인지 궁리하는 것이다.

구체화하기 위해 의료 영역을 들어 생각해 보자. 의료 AI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는 영상의학 분야다. 예를 들어 엑스레이 등 영상 이미지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AI의 역량에 관해 논의하는 맥락에서는 흔히 전문의와 비교할 때 AI가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하는지를 평가한다.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AI 기술을 실제 진단 과정에 도입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AI의 정확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전제로, AI가 영상의학 전문의의 역할을 부분적으로라도 대신하는 구조를 구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두 명의 영상의학 전문의가 투입됐다면, 향후에는 전문의 한 명과 AI가 판독하도록 절차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도 가능하다. AI가 전문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의를 도와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상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문 학술지 ‘란셋 디지털 헬스’ 최근호에 실린 한 논문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논문에서는 유방암 진단을 위해 AI가 보완적 역할을 하는 새로운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이 절차는 개념적으로 5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에서는 AI가 영상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유방암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영상, 그 가능성이 매우 낮은 영상, 그리고 판단이 어려운 영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2단계에서는 이 중 유방암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된 영상과 판단이 어렵다고 분류된 영상을 전문의에게 제시하고 전문의의 판단을 구한다. 이때 AI가 영상을 어떻게 분류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전문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3단계에서는 전문의의 판단을 본다. 전문의가 유방암 가능성이 높다고 판독한 영상은 전문의의 결정을 따른다. 그리고 전문의가 유방암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영상은 4단계로 간다.

4단계에 도달한 영상 중에서, 당초 AI에 의해 판단이 어렵다고 분류된 영상은 전문의 판단에 따라 유방암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다만 AI에 의해 유방암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됐던 영상은 이 단계에서 AI의 분류에 관한 정보가 전문의에게 제공된다. 5단계는 AI 분류에 관한 정보를 전문의가 파악한 이후의 판단에 관한 것이다. 전문의가 이 단계에서 기존의 판단을 유지할 수도 있고 변경할 수도 있다.

논문은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유방암 영상을 제대로 식별해 내지 못하는 오판의 가능성(위음성)과 함께 정상인의 영상을 유방암 영상으로 오판할 가능성(위양성)을 모두 줄일 수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문의의 업무 부담 또한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AI의 도움을 통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동시에 효율성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를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논문 사례처럼 AI의 도움을 적절히 받을 수 있는 구조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구조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기술 개발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학, 의학, 심리학, 정보경제학, 법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 사이의 협업이 전제돼야 한다. 사람이 AI와 협업하고 도움받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융합과 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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