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 경고그림과 문구가 갈수록 강해지면서 담배업계의 사업 재편이 빨라지고 있다. 국내 궐련 담배 시장이 흡연율 하락과 규제 강화로 정체된 가운데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로스만스 등 주요 업체는 해외 시장과 궐련형 전자담배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담뱃갑은 담배회사가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드러낼 수 있는 핵심 접점이지만, 경고그림의 표현 수위가 높아질수록 브랜드 이미지보다 흡연 위해성 메시지가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경고그림은 갈수록 공포스러운 표현과 그림으로 바뀌고 있다. 현행 제5기 경고그림에서는 궐련 담배 항목 중 성기능 장애가 빠지고 신장암이 새로 포함됐다. 구강암, 심장질환, 안질환, 말초혈관질환, 간접흡연 관련 그림도 교체됐다. 흡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을 더 선명하게 보여줘 경고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문구도 강해졌다. 기존에는 흡연 피해를 암시하는 표현이 많았다면, 최근 경고문구는 질병과의 관계를 직접 제시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예컨대 ‘폐암으로 가는 길’이라는 문구는 ‘흡연의 끝은 폐암’으로 변경됐다.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 표현보다 흡연의 결과를 단정적으로 제시해 소비자 인식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업계 대응은 국내 궐련 담배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국내 시장은 흡연율 하락과 광고 제한, 경고그림 강화 등 규제가 누적되면서 성장 여력이 크지 않다. KT&G는 국내 일반담배 시장에서는 점유율을 방어하되, 성장 동력은 해외 궐련과 궐련형 전자담배에 두고 있다. KT&G는 지난해 해외 궐련 매출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국내 궐련 매출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해외 궐련 매출 비중도 처음으로 국내를 웃돈 54.1%를 기록했다.

필립모리스와 BAT로스만스도 방향은 비슷하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를 중심으로 ‘연기 없는 제품’ 전환을 앞세우고 있다.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비연소 제품은 전 세계 108개 시장에서 판매됐고, 전체 순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달했다. BAT로스만스도 글로 신제품과 전용 스틱을 통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 궐련 담배의 브랜드 마케팅 여지가 줄어들수록 전자담배와 해외 시장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비담배 사업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KT&G는 담배 외에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혀왔다. 국내 궐련 시장이 규제 산업으로 고착화되면서 단일 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이다. 담배업계 내부에서는 국내 궐련 담배가 더 이상 고성장 사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담배 규제는 세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담배는 연간 10조원대 제세부담금을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세수원이기도 하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는 약 3000원대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등이 붙는다.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는 지방재정으로 들어가고,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금연사업과 건강증진사업 등에 쓰인다.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담배 판매에서 적지 않은 재정을 거둬들이는 구조다.

담배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추가 규제다. 정부는 경고그림 면적 확대, 경고 적용 대상 확대, 광고 없는 표준 담뱃갑인 ‘플레인 패키징’ 도입 등을 검토할 수 있다. 플레인 패키징은 담뱃갑에서 브랜드 고유 색상과 디자인을 없애고 제품명만 표기하도록 하는 제도다. 도입될 경우 담배회사의 패키지 마케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담뱃갑 경고그림은 이미 소비자가 제품을 인식하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며 “경고 수위가 더 높아지고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국내 궐련 시장에서 브랜드 차별화는 물론 유통 현장 관리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