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년 전인 코로나19 시기와 달리 2030의 소비지도가 바뀌고 있다. 명품과 오마카세에 지갑을 열던 2030이 이제 적은 비용으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동대문~동묘 일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취업난과 경기 둔화 등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든 가운데, 경험 자체를 포기하기보다 경험의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대문역부터 동묘앞역까지 이어지는 거리가 2030의 '초저비용 경험소비 벨트'로 떠오르고 있다. 동대문 액세서리 부자재상가에서 볼펜·키캡·젤리슈즈 꾸미기를 즐기고, 창신동 완구·문구거리에서 말랑이를 구경한 뒤 동묘 구제시장을 둘러보는 '하루 코스'가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어서다. 동대문역~동묘앞역 일대가 예산 2~3만원이면 하루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취업·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은 '경험을 줄이기보다 비용을 줄이는' 소비를 택하고 있었다. '쉬었음 청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신영 씨(33)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돈을 많이 쓰는 놀이는 부담된다"며 "동묘에서 구경하거나 말랑이를 사고, 동대문에서 꾸미기 용품을 사거나, 친구와 능소화를 보러 다니는 식으로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층의 소비 여력은 줄어들었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가 공개한 '세대별 월평균 실질소득 증가율 추이'에 따르면 20대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지난 2024년 기준 다른 세대 실직소득 증가율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2024년 20대 월평균 실질소득은 212만원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다른 세대 실질소득 증가율은 2~5%대를 기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동대문역~동묘앞역 일대는 주로 가성비 거리로 언급된다. '1만원으로 동묘에서 살아남기', '백수의 거지 데이트' 등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만지고, 보고,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해당 일대가 꼽히고 있다. 동대문 액세서리 부자재상가도 대표적인 가성비 코스다. 볼펜 꾸미기는 1만원이 채 들지 않고, 5만~7만원 수준인 젤리슈즈 꾸미기도 2만~3만원이면 가능하다. 이에 동대문에서 동묘로, 동묘에서 동대문으로도 하루 코스를 완성하는 콘텐츠가 SNS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해당 벨트 상가의 공통점은 단순히 '가성비'로 묶이지 않는다. 저렴한 비용으로 꾸미기, 만지기 등 직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핵심이다. 46년간 동대문 신발 도매상가에서 도매업을 해온 김종보 씨(64)는 "가격으로만 경쟁했으면 인터넷이 우위"라며 "지금 우리가 도매상가인데 젊은 층이 여기까지 오는 이유가, 소매업이 인터넷으로 죽어서다"라고 말했다.
초저비용 경험소비는 동대문역~동묘앞역을 넘어 다른 상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말랑이'다. 올해 초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서 입소문을 탄 말랑이는 서울 강동구 천호 문구·완구거리와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까지 번졌다. SNS에는 '창신동 말랑이 품절이면 천호로 간다', '국제전자센터도 말랑이 성지' 등의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며, 원하는 상품을 찾아 상권을 이동하는 소비 패턴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는 '초저비용 경험소비 벨트'가 형성된 배경에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변화했다고 봤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동묘와 동대문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던 상권이었다. 지금은 빈티지, 리폼, 꾸미기 등 하나의 소비 생태계로 묶이고 있다"며 "예전에는 얼마나 싸게 사느냐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신촌, 연남동보다 동묘·동대문으로 맞춰지면서 도심 상권이 재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코로나19 당시에는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오마카세나 명품 같은 보복 소비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찾는 방향으로 소비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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