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대를 혁신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도도한 흐름에 거꾸로 맞서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도 그랬고 국가도 그랬다. 러다이트 운동이나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 등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운동은 단순한 ‘새로운 것에 대한 무지’보다 기득권 축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패러다임 변화는 그 어떤 기술 변화보다 인간에게 미칠 영향의 범위가 넓다. 기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가장 빠른 기술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사람을 가장 깊이 이해한 기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AI 시대가 본격화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먼저 묻는 일이다.이번 전시는 서울경제진흥원(SBA)과 LG CNS가 함께 주최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손을 맞잡았다는 점도 의미 있지만, 더욱 주목할 부분은 동대문 지역의 중소기업과 제조 생태계가 전시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의상과 전시 오브제는 지역 제조기업의 기술과 손끝에서 탄생했고, 다양한 체험 행사 역시 동대문의 소재와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첨단 디지털 기술과 수십 년간 축적된 제조 기술이 하나의 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 것이다.
AI 시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첨단 기술과 전통 산업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다르다. 기술은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대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연결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기술력과 공공의 지원, 그리고 지역 중소기업의 제조 경쟁력이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
동대문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패션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온라인 소비 확대와 산업 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 시기에 지역 제조기업이 첨단 기술 콘텐츠와 결합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한 것은 지역 산업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기술은 지역과 함께 성장할 때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AI는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하지만 기술 경쟁력은 결국 사람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느냐에서 완성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사람과 단절되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반대로 사람을 향하는 기술은 산업을 성장시키고 지역을 살리며 사회를 연결하는 힘이 된다.
기술은 혼자 발전하지 않는다. 사람과 산업, 문화와 지역, 기업과 사회가 함께 연결될 때 비로소 혁신은 지속된다. AI가 뛰어난 답을 찾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는 일이다.
결국 미래를 만드는 것은 AI가 아니다. 기술은 가장 앞선 곳에서 시작될지 모르지만, 그 끝은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혁신, 그리고 민·관이 함께 조성하는 상생의 생태계.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경쟁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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