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 칼럼] 2437개 규제특구가 일깨우는 진실

입력 2026-08-02 17:44   수정 2026-08-03 00:09

대한민국은 규제 예외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특구(special zone)가 넘쳐나는 나라다. 지난해 기준으로 87개 종류의 특구·산업 클러스터가 무려 2437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정부 자료에서 확인되는 수치다.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전국 시·군·구가 226개(기초 지자체가 없는 세종시와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서귀포시를 포함하면 229개)인 만큼 단순히 나누면 시·군·구 한 곳당 10개가 넘는 특구가 존재하는 셈이다. 전국 모든 지역이 특구 체계에 편입해 있다는 얘기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11개 정부 부처가 제각기 운영하는 특구 명칭도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친숙한 자유무역지역과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기업도시뿐만 아니라 규제자유특구, 지역특화발전특구, 산업기술단지, 입지규제최소구역, 문화특구, 관광특구, 국가식품클러스터 등도 모두 특구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많은 특구가 역설적으로 기업하기 힘든 지금 대한민국의 규제 환경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얽히고설킨 규제 없이 편하게 기업할 수 있는 나라였다면 2437곳에 달하는 특구가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여전히 신산업 및 노동 규제 탓에 기업하기 힘든 나라다. 규제 개선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은 ‘왜 존재하는지 의심받는 특구’가 적지 않다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정부 내에서도 혁신 효과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중복·난립한 특구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바이오 신약 등의 신산업 경쟁을 지원하려면 특구라는 겉치레나 형식이 아니라 규제 특례의 실효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쓴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 부처이기주의의 높은 벽에 막혀 별 진척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AI·반도체 산업 등의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메가특구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지방 대도시 단위로 지정하는 메가특구에는 기존 2437개 특구에서 볼 수 없었던 대대적인 규제 특례와 함께 재정·세제·금융 등의 정책 지원이 이뤄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800조원 넘게 투자하기로 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맞물리는 입법이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형식주의가 판치는 기존 특구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큰 배경이기도 하다.

메가특구법에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담으려는 논의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고소득 연구원과 관리직 직원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는 너무나 당연한 조치다. 미국과 일본이 활용하는 제도인데도 그동안 우리만 밤을 새워 연구해도 모자랄 고급 두뇌의 손발을 묶어놨다. 노동계가 반발한다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설득하고 관철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차제에 신산업 분야의 기술 규제도 전면적으로 풀어야 한다. 미래차 기술의 핵심인 자율주행만 해도 미국과 중국이 멀찌감치 앞서간 지 오래다. 로보택시의 경우 미국은 12개, 중국은 최소 7개 광역도시 단위로 서비스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시범 운행 지구에서 임시 운행 허가를 받은 로보택시 몇 대가 다니는 수준으로 비교가 안 된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일본도 기업 주도형 무규제 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우븐시티는 도요타 주도로 설계되고 개발되는 자율주행 도시다. 바이오 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의료데이터 활용 장벽도 낮춰야 한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힘입어 지금 반도체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한국은 신산업 분야에서 앞서 있는 나라가 결코 아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미국,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미국과 중국에서 가능한 사업이라면 한국에선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메가특구 규제 특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 일부 지역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전국을 ‘규제 프리존’으로 조성하기 위한 시범 사업이 돼야 한다. 대한민국 전체를 메가특구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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