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장 오픈 시각은 오전 11시. 하지만 개점 시각을 한 시간 앞둔 오전 10시부터 이미 유명 아이돌, 드라마를 내세운 팝업 매장 앞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팝업 메카'로 불리는 성수동인 만큼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부터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인파로 붐볐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는 목적지가 이 같은 팝업 매장이었다.
K드라마와 예능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이들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임시 매장(팝업스토어)과 식음료 매장이 Z세대의 놀이 문화이자 방한 외국인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드라마, 예능,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지식재산을 활용한 협업 상품과 오프라인 체험 공간을 찾는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방송 콘텐츠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패션 플랫폼부터 백화점, 외식업계, 대중 투자(크라우드펀딩) 플랫폼까지 산업 간 경계를 허문 콘텐츠 확보전이 가열되는 양상. 단순 시청을 넘어 화면 속 세계관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경험하고, 일상 패션 의류나 음식 등 소장 가능한 상품으로 소비하려는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무신사는 일찌감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흥행 당시 작품 속 상징인 초록색 체육복을 단독 한정 발매해 무작위 추첨 판매(래플) 열풍을 이끈 바 있다. 최근에는 2022년 첫 방영 이후 탄탄한 팬덤을 구축한 ENA '신병'의 네 번째 시즌 '신병4: 사보타주' 프로젝트를 단독 공개했다.
무신사는 오는 31일까지 무신사 스토어 성수에서 임시 매장을 열고 드라마 속 군부대 생활관 등 핵심 배경을 오프라인에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신병' 세계관 속 캐릭터인 '짬타'와 '짬찍이'를 활용한 방석 쿠션을 비롯해 수통과 군번줄 모양의 열쇠고리 등 재치 있는 기획 상품을 선보였다.
아울러 패치 더블백 짐색, 트러커 모자, 그물망(메시) 티셔츠 등 감각적인 길거리 패션(스트리트웨어) 제품군을 함께 구성해 일상복으로의 확장성을 높였다. 이에 힘입어 성수동 현장에는 개점 질주(오픈런) 행렬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셰프 경연 예능인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는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손잡고 다음달 17일까지 출연 셰프들의 대표 메뉴를 차례로 선보이는 릴레이 미식 매장을 운영 중이다. TV 화면 속 음식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맛보는 체험형 소비를 유도해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유통가 전반의 지식재산 협업도 활발하다. 투썸플레이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과 손잡고 고풍스러운 영국식 티타임을 재해석한 한정판 기획 상품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영국 상류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케이크와 음료에 이어 미러 키링, 에코백, 텀블러 등 라이프스타일 굿즈까지 선보이며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작품의 분위기를 일상 속에서 소유하도록 만들었다.
과거 tvN '선재 업고 튀어', '눈물의 여왕' 등 인기 드라마 임시 매장이 더현대 서울 등 주요 백화점의 일평균 매출과 외국인 매출 비중을 끌어올렸던 성공 방정식이 일상화되며 패션과 식음료 등 유통 전반으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의 소비 트렌드가 '소유'에서 나아가 '이야기'와 '경험'까지 향유하는 흐름으로 바뀌면서 유통업계는 콘텐츠 IP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SNS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에게 팝업은 물건을 사는 장소인 동시에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놀이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광고를 위해 별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대신 이미 팬덤을 확보한 콘텐츠의 세계관을 빌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이런 경험은 K-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한 해외 팬에게 팝업스토어는 콘텐츠를 실제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내 플랫폼의 해외 이용자 수를 보면 콘텐츠 IP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2026년 1월 기준 전체 월간활성이용자(MAU)의 약 40%가 해외에서 접속했다고 밝혔다. 미국·일본·중국 등을 중심으로 40여 개국에서 결제가 발생했고, K-뷰티와 굿즈, 패션, 콘텐츠 등이 해외 이용자 유입의 주요 영역으로 제시됐다. 와디즈에 따르면 해외 거래액도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은 단순한 상품의 기능이나 디자인을 넘어 자신이 몰입한 콘텐츠의 세계관과 감성을 함께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유통·패션업계 역시 단순 판매 채널에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 체험 공간과 패션 상품을 연계해 팬덤을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 콘텐츠 지식재산 사업을 지속해서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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