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신 청구서'는 10월 2일 형사소송법 개정법률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달라질 사법 환경의 사회적 비용을 짚어본다. 개정법 시행으로 보완수사권을 지닌 검사를 통해 미진한 수사를 걸러내던 장치가 사라지는 만큼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대가로 어떻게 되돌아오고 있는지 추적한다. [편집자주]
<i>"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도 매일매일 끝이 없다. 언니를 가지고 점사니 빙의니 하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너무 고통스럽다고 좋게 얘기해도 그냥 차단한다."</i>
경찰의 부실한 초동 대응 논란으로 이미 한 차례 큰 고통을 겪은 제주 실종·사망 사건 유족이 이번에는 A씨의 죽음을 소재로 한 무속 유튜브로 또다시 상처를 입으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수사 공백이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만들고 있다. 경찰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사이 무속 유튜브는 피해자의 죽음을 점괘와 추측으로 상품화했고, 조회수와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동안 유족은 2차 피해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 "타살에 연쇄살인"…수십만뷰 쏟아진 무속 유튜브
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최근 A씨 사건을 계기로 일부 무속인 유튜브 채널에서 관련 영상 조회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일부 채널에서는 A씨 관련 영상을 올린 뒤 하루 신규 구독자 수가 채널 개설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최근 한 달간 관련 영상이 해당 채널의 역대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사례도 포착됐다.하지만 영상 상당수에는 경찰 수사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다. 무속인들은 A씨의 사망 원인부터 범인의 수와 인상착의, 범행 방식, 특정 국적 관광객의 연루 가능성까지 점괘를 통해 제시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25일 한 무속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A씨 관련 영상은 조회수 30만 회를 넘어섰다. 'A씨 상상도 못 할 신점이 나왔다' 제목의 영상 속 무속인은 "증거를 잡아 범인을 찾기에는 너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리는 안 나온다. 타살로 보인다"고 단언했다.
지난달 30일 또 다른 채널 무속인은 "연쇄살인인 것 같다.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라 일곱, 여덟 명"이라며 범인을 30대 중후반 남성 두 명으로 특정하는 주장까지 내놨다.
특정 국적 관광객의 범행 가능성을 거론한 영상도 등장했다. 지난달 31일 다른 무속인 채널에서는 "한국어가 아닌 중국 말소리가 들린다"며 중국인 관광객 연루 가능성을 언급했다. 관광객 감소를 우려해 당국이 비슷한 사건을 숨겨왔다는 주장과 함께 "누군가 최근 시신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영상은 공개 일주일 만에 14만 회 넘게 재생됐다.
A씨 유족 측은 "콘텐츠들이 매일같이 올라오는데 다 터무니없고 웃음도 안 난다"며 "조회수를 뽑으려고 소비하는 게 유가족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움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법적 대응 가능한 것은 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타살인지 자살인지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아 사건이 미궁에 빠진 측면이 있다 보니 조회수로 수익을 얻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좋은 먹잇감이 됐다"고 짚었다.
◇ 공권력 불신이 만든 '빈자리'…사적제재서 무속으로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대표 운세 앱 포스텔러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지난해 7월 54만8291명에서 8월 59만7111명으로 8.9% 증가했다. 올해도 7월 50만8847명에서 8월 53만7576명으로 5.6% 늘며 2년 연속 8월에 반등했다.
공교롭게도 두 시기 모두 사회적 불안을 키운 강력 사건과 경찰 대응 논란이 이어졌다. 올해 8월에는 제주 실종·사망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가 확산됐고, 지난해 8월에는 인천 사제총기 살인사건에서 경찰의 늑장 대응 논란이 불거졌다. 개별 사건과 운세 앱 이용 증가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점술·운세 소비가 함께 반등한 점은 눈에 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온라인 공간의 개인 콘텐츠 확산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돼 있다. 그동안 이런 '불신의 빈자리'를 채운 대표적 콘텐츠가 범죄자 신상 공개나 응징을 내세운 사적제재형 영상이었다면, 최근에는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점치는 무속 콘텐츠로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연구진이 한국치안행정학회에 게재한 연구에서 유튜브의 '사적제재' 관련 뉴스 영상 10편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사법체계와 공권력에 대한 낮은 신뢰가 사적제재의 발생과 확산을 부추기는 주요 배경으로 확인됐다.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허위정보일수록 온라인에서 높은 이용자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올해 유럽정보시스템학회(ECIS)에 발표된 연구진이 유튜브 영상 720개를 분석한 결과 부정확한 정보를 담은 영상에서 분노·혐오 같은 강한 감정과 확신에 찬 표현이 이용자 반응 증가와 연관성을 보였다.
A씨 관련 무속 영상에서도 "타살이다", "연쇄살인이다", "윗선의 압력이 있다"는 식의 단정적 표현이 반복됐다. 공적 기관이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한 사건의 빈자리를 자극적인 비공식 판단이 대신 채우고, 그 관심이 조회수와 구독자로 환산되는 구조다.
◇ 지우는 것도 유족 몫…"2차 피해 심각"

문제는 피해 대응 부담까지 사실상 유족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내달 2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 이후 각종 사회적 사건을 둘러싼 수사 혼선이나 논란이 커질 경우, 이를 소재로 한 이른바 '조회수 장사' 콘텐츠가 더욱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특히 제주 실종 사건처럼 사건 해결이 지지부진할수록 또 다른 역설이 생긴다. 유가족이 공론화를 위해 실종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공개가 수사에 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무속 콘텐츠에는 피해자를 특정하고 점괘를 만들어내기 쉬운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더구나 무속 콘텐츠는 "점괘에 그렇게 나온다", "보인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 객관적인 사실 주장과 경계가 모호하다. 근거 없는 주장이라도 플랫폼의 일반적인 허위정보 규정만으로 일률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제시된다.
김 교수는 "사망자나 유가족 입장에서 보면 억측이 난무하고 사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2차 피해가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런 콘텐츠가 사건 때마다 무분별하게 양산되면 유가족뿐 아니라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정부와 경찰을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신현보/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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