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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뿌려진 사람들의 힘 [EDITOR's LETTER]

입력 2026-10-05 12:57   수정 2026-10-05 13:00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뿌리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고향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오랫동안 떠남과 상실의 이미지가 따라다녔습니다. 전쟁과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유대인의 역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흩어진다는 것은 잃는 것만을 의미할까. 사람은 고향을 떠나면서 하나의 세계를 잃는 대신 또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브린은 지금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입니다. 포브스가 9월 21일 기준으로 집계한 그의 재산은 2679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0조원입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여섯 살짜리 이민자 소년이었습니다. 브린은 1973년 소련 모스크바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소련 사회에서 유대인들이 겪었던 차별을 피해 그의 가족은 1979년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소련에서 태어난 소년은 훗날 래리 페이지와 구글을 창업했고 세계의 정보가 흐르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브린이 자신의 과거를 뒤에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010년 구글과 중국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놓고 충돌했을 때 그의 기억 속 소련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브린은 중국의 검열과 정보 통제를 보며 자신이 태어난 소련을 떠올렸다고 직접 말했습니다. 국가가 사람들의 정보 접근을 통제하는 모습을 자신과 가족이 경험했던 사회와 겹쳐 본 것입니다.

2017년 미국의 이민 제한 정책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모였을 때도 브린은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짧게 말했습니다. “나는 난민이기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브린의 철학을 완성하는 데 디아스포라는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소련과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정보의 자유와 개방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나라에서만 살았다면 갖기 어려웠을 시선입니다.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경쟁력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내부자이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외부자입니다. 한 사회에서는 너무 익숙해 보이지 않는 것을 다른 사회에서는 낯설기 때문에 발견합니다. 두 세계의 차이를 알고 그 사이를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가 만난 미국의 한국계 창업가들에게도 이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막걸리와 향, 음식과 미용법, 공간과 미감을 미국 시장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을 기억하면서 미국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번역입니다.

여기에 최근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더해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문화의 가격이 올라간 겁니다.

부모 세대에게 한국은 떠나온 나라였습니다. 집 안에서는 너무나 익숙했던 음식과 술, 냄새와 미감도 미국 사회에서는 굳이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K팝과 영화, 드라마, 음식과 뷰티가 세계로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때는 설명해야 했던 한국이라는 배경이 이제는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았지만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어느 순간 사업의 자산이 된 것입니다.

브린은 자신의 이주 경험을 철학으로 번역했습니다. 지금의 한국계 창업가들은 자신들의 이중문화 경험을 상품과 브랜드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습은 다르지만 출발점은 비슷합니다. 두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늘 새로운 것을 얻으려 합니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남들에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때로 경쟁력은 새로 얻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한 번도 자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는 데서 생기기도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제 안에 뭐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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