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독도문제 계기로 ‘안전통화 저주’에 빠져

입력 2012-09-03 11:31   수정 2012-09-03 11:31

◈ 일본경제, 독도 문제를 계기로 ‘안전통화 저주’에 빠져든다

독도 문제를 계기로 일본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달려 왔던 ‘안전통화 저주(curse under safe haven)’에 더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제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안전통화 저주란 미국, 유럽의 잇따른 위기로 안전 피난처(safe haven)로 엔화 수요가 증대되는 현상을 말한다.

작년 이후 일본경제는 유럽위기가 심화되면서 엔화 강세에 시달려 왔다. 같은 해 8월에 출범했던 노다 정부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취약한 재정과 ‘제로 금리로 정책수단이 바닥이 났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의 해외진출 억제와 경기부양 차원에서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에 주력해 왔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실질GDP 성장률은 1980년대 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2%로 급락한 것은 내수 부진 때문이다.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970년대 이후 0.5∼0.8% 포인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내수 기여도는 70년대 3.8% 포인트, 80년대 4.0% 포인트에서 1991∼2008년중 0.6% 포인트로 급락했다.

최근 개선될 조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내수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큰 편이어서 내수확대 없이는 디플레 국면에서 탈피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 부진이 고용과 임금 불안정성 증대, 인구고령화 진전 등 당장 해결하기 곤란한 구조적 요인들에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장기 성장기반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높다.



내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일본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서는 경제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야 가능하다. 앞으로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노다 정부가 시장개입을 통해 엔화 약세로 돌려나야 할 의지가 관건이다. 대외적으로는 엔화 강세요인으로 작용해 왔던 유럽재정위기와 미국의 인위적인 달러약세 정책 등이 언제 마무리될 것인가가 엔화 약세전환 시기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국 통화에 대한 신뢰는 국가의 부채 감내력(debt tolerance)에 대한 시장의 평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부채 감내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는 △정부와 민간의 대외지급능력 △국가채무의 구조 △전반적인 경제 · 정치 · 사회의 안정성 등이 가장 큰 변수다. 이밖에도 국내저축능력과 외환보유고 그리고 장단기 해외자금 조달능력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기업들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기반으로 장기간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지속해 막대한 순대외 채권을 축적함에 따라 외화 지급불능 위험에 대한 강한 대응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핵심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이 여전히 세계시장에서 독과점을 형성해 1981년 이후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해 왔고 순대외 채권도 꾸준히 늘어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다.

일본 국민과 투자자들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국내투자 편향(home bias)이 강해 대외충격 발생 시에도 자금조달 애로를 겪지 않는다. 일본 국민과 투자자들은 저위험?저수익의 안전자산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계 등의 대규모 여유자산이 국내채권 매입자금으로 활용돼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국내발행만으로도 대부분의 소요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경제활력이 장기간 저하돼 왔으나 경제규모가 크고 경제의 불확실성은 매우 작으며 국가지배구조도 건전해 전반적인 부채 감내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통화기금(IMF)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성장률, 실업률, 소비자물가상승률, 경상수지(명목 GDP대비 비율)등 주요 경제지표의 변동성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 엔화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오래전부터 형성돼 왔다. 엔화의 명목실효환율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주가 변동성 지수(VIX)와 포지티브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 유럽위기 등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엔화 강세현상이 더 뚜렷해 졌다.



일반적으로 시장 리스크¹, 유동성 리스크², 신용 리스크³ 등으로 구분되는 리스크 이론에서 특정국 통화가 세 가지 위험이 적으면 안전통화로 평가된다. 엔화의 시장 리스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가 많은 유로화, 스위스 프랑화, 파운드화, 호주의 달러화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엔화의 표준편차는 호주 달러화보다 훨씬 작고 유로화, 스위스 프랑화 및 파운드화와 비슷하다.



유동성 리스크도 미 달러화, 유로화 다음으로 작다. 엔화의 거래량은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 17개국 공용화폐인 유로화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시장의 심도를 보여주는 매매호가 스프레드(bid ask spread)도 유로화보다 크지만 파운드화, 호주 달러화보다 훨씬 작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용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정부부채 규모가 작은 미국, 독일, 영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과 대체로 비슷하다. 일본의 국채 크레딧트 디폴트 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단기 국채에 대해서는 미국, 호주보다 낮으며 3∼5년 만기 국채에 대해서는 주요국을 소폭 상회한다. 신용등급은 지난해 대지진에 따른 재정악화 우려로 하향 조정됐으나 여전히 채무상환능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 경제주체의 보수적 투자 행태, 경제전반의 안전성 등이 단기간 내에 급변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엔화의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본경제는 안전통화 저주로부터 쉽게 벗어나가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예측기관들도 앞으로 엔·달러 환율이 완만하게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일본경제 회복에는 크게 도움돼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일본경제가 ‘안전통화 저주’로부터 벗어나 회복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느냐 여부는 ‘제2의 역플라자 합의’가 나올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역플라자 합의(anti-Plaza agreements)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약세인 만큼 제2의 역플라자 합의가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태도가 관건이다. 최근 글로벌 환율전쟁과 탈(脫)달러화 조짐의 빌미를 제공하는 미국도 향후 달러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일본이 독도 문제를 빌미로 통화스와프 협정 포기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에 대해 경제적으로 압박하면 할수록 유럽위기로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켄그린의 ‘안전통화 저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영향이 적다고 해서 ‘해볼 테면 해보라’식의 대응은 절대로 심가해야 한다. 지금이라도TTTT 최선책은 양국 간의 관계를 원만하게 복원하는 길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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