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초읽기…'저녁 있는 삶' vs '12조원 비용'

입력 2017-10-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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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더이상 계속돼선 안 된다"고 강조함에 따라 국회와 사회, 재계에서 `근로시간 단축` 쟁점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만약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조속한 실행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만큼, 이르면 당장 내년부터 대기업 등에서는 `주 52시간 근로`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이 갑자기 크게 줄면 대체 인력 추가 고용, 휴일근무수당 가산지급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잔업·특근 축소, 교대근무제 조정 등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예행연습`에 들어간 기업들도 적지 않다.


◇ 1주 최장근로 68→52시간 단축…"OECD 최장근로 오명 벗어야"

현재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에서 논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핵심은 1주일 최장 근로 가능 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2004년 이후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라 1주일에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노사가 합의한 경우, 1주에 12시간 연장근로(근로기준법 제53조) 및 휴일근로(제56조)가 가능하다.

하지만 2000년 9월 정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이 연장근로 12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 `1주 12시간`이라는 연장근로 상한 기준에서 1주일을 7일이 아니라 주말을 뺀 5일로 간주한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현행법과 행정해석 테두리 안에서는 최장 `주 68시간(법정근로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토요일 8시간+일요일 8시간) 근로가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법·제도적 혼란에 더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2013년 기준 2천57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706시간)보다 350시간이나 많다는 사실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2015년 9월 노사정은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합의했다.

이 합의안에는 기업 규모별 단계적용(4단계), 한시적 특별연장근로 허용(4년, 주 8시간) 등 재계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도 포함됐지만 이후 19대 국회에서 파견법 등 다른 노동 관련 법 개정과 맞물려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 환노위는 지난 8월 말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기업을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50~299인, 5~49인 등 기업규모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나눠 유예기간을 차등하고 단계별로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데까지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시행 유예기간으로 민주당은 규모가 큰 기업부터 1년-2년-3년을, 자유한국당은 1년-2년-4년을 주장하면서 완전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국정감사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다음달께 다시 근로시간 단축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휴일근로수당의 중복 가산(통상임금의 100%), 추가 연장근로 허용(1주당 8시간), 근로시간 특례업종(주 52시간 예외 업종) 선정 등을 놓고도 여야 간, 경영·노동계 간 입장 차이가 여전하다.

◇ 12조원 추가비용에 노사 갈등 우려도…"업종별 탄력적 근로시간 필요"

하지만 이미 여야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큰 방향에 공감했고, 여당 안에서는 "대기업의 경우 유예기간을 6개월로 줄이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내 `주 52시간 근로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에는 큰 이견이 없다.

더구나 문 대통령까지 `행정해석 우선 개정` 방법을 제시한 만큼, 정부와 여당은 정책 도입에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가장 마음이 무겁고 초조한 쪽은 재계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이후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12조3천억원에 이른다.

세부적으로 보면, 우선 휴일근로수당 중복가산(통상임금의 100%) 등이 적용되면 기존 근로자에게 연 1천754억 원이 더 지급된다.

아울러 근로시간 단축으로 약 26만6천명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추가 고용으로 메우면 현금·현물급여 등 직접 노동비용으로 연 9조4천억 원이 필요하다.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비, 직원채용비, 법정·법정 외 복리비 등 간접 노동비용 약 2조7천억 원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비용 가운데 70%(약 8조6천억 원)는 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 집중된다는 게 한경연의 분석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도금, 금형 등 뿌리 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력난이 더 심해지고 국제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며 "대통령이 중소기업계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관계자도 "2014년 기준 OECD 평균의 68%에 불과한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단순히 노동시간만 줄이면 기업과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성과연동형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동사에 업종 특성에 맞춰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도 함께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다수 기업이 생산설비와 근무제도를 현재 인원에 최적화한 상태로 운영하는데, 근로시간이 급격히 단축되면 신규 채용보다 감산(생산량 감축)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며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구인난, 업무 숙련도, 재정 여건 등 때문에 불가피하게 초과 근로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근로시간만 단축하면 범법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부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주 52시간` 체제 도입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이미 `워밍업`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각 사업부문 책임자들에게 `가능하면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자동차는 지난달 21일 노조에 `잔업 전면 중단과 특근 최소화` 방침을 통보했다. 실질적으로 통상임금 소송 1심 패소에 따른 인건비(수당) 인상 부담을 덜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게 기아차 안팎의 분석이지만, 기아차는 이 방침의 공식 배경의 하나로 `장시간 근로 해소`를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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