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외환위기 예방에 무게를 뒀던 외환 정책의 방향을 30년 만에 원화 국제화로 전환한다.
외국인이 해외에서도 원화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대폭 풀고 무역대금과 해외 결제에서 원화 사용을 확대해 원화를 '자유교환통화'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재정경제부는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원화를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원화 수요와 공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시장 개방에 따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 건전성 관리 체계도 함께 개편한다.
● 내년부터 해외서 원화 거래...자본거래 신고도 대부분 면제
정부는 지난 6일 외환시장을 24시간 개장한 데 이어 내년 1월부터 역외 원화 거래를 자유화한다.
외국인은 국내 은행에 별도 원화 계좌를 만들지 않고도 해외에 소재한 '역외원화결제기관'에 계좌를 개설해 원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자본거래와 관련한 신고 의무도 대폭 완화된다. 현재는 자본거래를 할 때 은행이나 한국은행, 재경부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앞으로는 국내 부동산 거래를 제외한 모든 거래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다.
은행의 거래 확인 의무도 완화한다. 거래 원인과 관련 서류를 일일이 확인하는 대신 계좌 정보 등 최소한의 사항만 점검하도록 바꿀 예정이다.
외국인 간 원화 거래의 최종 결제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은행에 '역외원화결제망'을 새로 구축한다. 금융기관을 통한 원화 거래가 한국은행 결제망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해외 투자자의 원화 접근성이 개선되고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도 한층 편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형렬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세계적으로 큰 규모의 시장이고 국채 시장도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통해 선진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며 "투자 여건이 성숙돼 있는 상황에서 원화 국제화를 통해 제한 없이 편리하게 해준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 정책금융 우대...원화 수출 결제 유도
정부는 외국인의 원화 접근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역대금 결제에서도 원화 사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이 무역대금 결제 등에 원화를 활용할 경우 정책금융 금리를 우대하고 무역보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원화 결제를 선택할 유인을 높여 기업이 환전 과정에서 부담하는 비용과 환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주요 교역국과는 양국 통화로 수출입 대금을 직접 결제하는 '현지통화 직거래 체계(LCT)'도 구축한다.
LCT가 도입되면 원화와 상대국 통화를 중간에 달러 없이 직접 교환할 수 있다. 직거래 과정에서 일부 외환 규제도 면제된다.
해외에서 원화 기반 결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가 간 QR결제 연동도 확대한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가능한 결제 체계를 다른 주요 관광국으로 넓혀 해외 결제 수수료를 낮추고 국민의 이용 편의를 높일 방침이다.
다만, 정부는 원화 국제화가 곧바로 달러 중심의 거래 관행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원화 국제화를 한다고 해서 달러로 거래하던 것이 원화로 되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경상거래에서 원화 비중이 높아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 야간 유동성 공급 확대...리스크 점검도
정부는 외환시장 개방으로 야간에 원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에도 대비한다.
우선 국내 외국환은행이 외국금융기관에 원화 유동성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이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원화 국제화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 시장 안전판도 확충한다. 기존 외환 건전성 관리 체계도 국제화에 맞춰 재설계할 계획이다.
이 국장은 "1997년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주식 시장과 국채 시장 투자에는 제약이 없었지만, 외환거래 측면에서는 제한이 있었다"며 "한국의 경제 규모도 세계 5위가 됐고 경상거래와 자본거래에서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원화 국제화를 미루고 부작용과 외환위기를 걱정하기보다는 국제화에 대한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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