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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무역선·사신선 머문 국제항…한·중·일 연결한 가야의 해양 무역 2019-12-20 17:00:27
비롯해 가야와 연관된 흔적을 많이 남겼다(윤명철, 《한국해양사》). 만약 강력한 정치세력이 무력을 이용해서라도 가야연맹의 통일을 이룩했다면 더 강력한 고대국가로 발돋움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 결과가 가야나 한민족에게 긍정적으로 나타난다고 확신할 순 없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400년, 백제를 항복...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낙동강·한강 내륙 수로망 확보한 신라…삼국통일 기선 잡았다 2019-12-13 17:26:22
됐다(윤명철, ). 조금 훗날이지만 가야금을 만든 우륵(于勒)은 신라로 투항했고, 충주의 탄금대로 이주해 살았다. 뛰어난 음악으로 가야의 마음을 통일시키려 했던 그는 운명을 따라 신라에서 자기 뜻을 펼쳤다. 신라 사회는 자신감에 가득 찼고, 진흥왕은 친정을 시작했으며 ‘개국(開國)’이라는 특별한 연호를...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경주, 수로 교통 발달한 해항 도시…초기부터 日 혼슈 지역 진출 2019-12-06 17:18:10
등의 포구들이 발달한 울산만으로 들어간다(윤명철 ). 삼국사기에 따르면 4대 임금인 석탈해(昔脫解)는 왜국의 동북 1000여 리 떨어진 다파나국(多波那國)에서 출발한 상자() 속에 넣어져 울산 지역인 아진포(阿珍浦)에 들어왔다. 통일신라시대에 이슬람 상인으로 추정되는 처용과 연관된 개운포와 처용암도 울산만에 있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고구려에 밀려 벼랑 끝에 선 백제…中·日과 해양교류로 강국 부활 2019-11-29 17:23:29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농업과 함께 해양을, 국내 안정과 함께 과감한 해외 진출을 병행하는 정책을 택했다. 이를 위해 해양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해양을 최대한 이용해 분단된 중국과는 외교 협력과 무역, 문화 교류를 했고 일본열도에는 정치적으로 진출해 국가를 발전시키고 위상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윤명철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수륙 물류 중심지에서 일어난 백제…서해 해상권 확보에 전력 2019-11-22 18:08:17
신속하게 재건했다. 또 일본열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중국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국제적인 위상도 회복해갔다. 이 새로운 백제의 성공에는 해양활동과 해양력의 복원이 큰 역할을 했다.(윤명철 ) 아차산의 후미진 기슭 벼랑 위에는 ‘개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돌무덤이 덩그러니 있다. 한강 너머로...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강력한 기마군단에 정예 수군…고구려는 '해륙국가'였다 2019-11-15 18:10:50
‘동아시아 4강’ 체제를 이뤘다(윤명철 ). 그렇다면 고구려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고구려는 남북조 모두에 사신을 자주 파견했는데, 남조와 교섭하는 빈도가 항해조건이 훨씬 나은 백제보다도 많았다. 장수왕은 송나라가 북위와 충돌할 때인 439년, 다른 화물과 함께 군수물자인 말 8...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한민족 역사 잇기…고구려의 계속된 영토 확장은 '원조선 회복 전쟁' 2019-11-08 17:21:48
통일전쟁 성격도 있었다고 여겨진다.(윤명철 ) 궁금하다. 우리 민족이 자주성을 지키는 가운데 민족공동체로서 장구한 역사를 유지한 까닭은 무엇일까? 고구려가 큰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명분과 힘은 무엇일까? 원조선에서 출발해 오랫동안 통일과 분열의 변증법을 거쳐 온 역사공동체라는 정통성과 계승성 때문이 아닐까?...
몽암역사학술상에 윤명철 교수 2019-11-04 17:42:48
후원하는 몽암역사학술문화상 수상자로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진)가 선정됐다. 동국대 사학과를 나와 성균관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윤 교수는 고구려사와 해양사를 주로 연구했다. 한민족학회 회장, 고조선단군학회 회장을 거쳐 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유라시아실크로드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새 농토·풍성한 수확물…2000년 전 쪽배·뗏목 타고 바다를 건넜다 2019-11-01 18:01:52
유민들도 남쪽으로 밀려들었다(윤명철, ). 자연스럽게 신기술과 발전된 문화들이 전파되면서 제철산업과 군수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벼농사가 활성화되면서 경제력 또한 급상승했다. 사료와 각종 유물이 증명하듯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졌으며, 김해 사천 창녕 등 남부해안 일대는 중계무역 거점으로 부상했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해륙 교통로 확보하고 중계 무역…황해 무역권 놓고 漢과 격돌 2019-10-25 17:31:10
더불어 해상권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전후 황해엔 본격적인 무역망이 완성됐고,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군사적인 힘이 작동하면서 한나라의 내해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또 멸망한 조선의 유민들은 대거 남진했고, 일부는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윤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