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증권사 건물 경비원 한 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170명이나 몰렸어요.”서울 중구의 한 인력파견업체 대표 A씨는 “경비원 지원자 중 대기업 출신과 석사급 고학력 지원자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며 “은퇴 후 재취업 시장의 구직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한 사람은 이제 흔하다”며 “화단 관리와 재활용 쓰레기 분류같이 체력을 요하는 직업인 데다 고스펙 지원자는 관리하기도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오히려 채용을 꺼린다”고 했다.
재취업 성과는 퇴직 전 주된 직장(가장 오래 일한 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따라 달랐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중고령층 일자리 모델 개발 연구’에 따르면 관리직인 행정·경영·금융보험 관리자의 재취업률은 58.3%, 사무직인 경영지원 사무원은 58.7%로 평균(63.7%)보다 낮았다. 반면 보육교사 및 사회복지 종사자 74.7%, 식당 서비스원 71.7%, 보건·의료 종사자 69.4% 순으로 재취업률이 높았다. 사무·관리직은 은퇴 이후 경력을 이어갈 통로가 상대적으로 좁았다.경비원과 청소종사자는 진입 장벽이 낮아 재취업 시장에 다른 직종 출신이 대거 유입되면서 정작 해당 일자리에서 오래 일한 근로자의 재취업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퇴직자가 주된 일자리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단순 서비스직을 전전하는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붐 세대는 평생 한 직장에 머무르는 성향이 강했다. 전체의 63.3%가 한 직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안정형’으로 나타났다. 평균 직업 수도 1.79개로 집계됐다. 직종을 바꾸더라도 기존 직무를 유지할 확률은 90%에 달했다. 오랜 기간 쌓은 전문성과 경력이 가장 큰 자산이지만, 정작 재취업 시장에서는 이를 살릴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단순한 고용 유지를 넘어 경력 유형별로 차별화된 고령자 고용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금 하락세는 더욱 가팔랐다. 재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50~54세 456만원에서 55~59세 393만원, 60~64세 309만원으로 감소했다. 65~69세는 236만원, 70세 이상은 195만원으로 떨어져 50대 초반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마지막 일자리의 법정 정년을 늘리는 것보다 은퇴 후 주된 경력을 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기관, 전문직에서 쌓은 경험이 은퇴와 동시에 사라지고 경비, 청소 등 생계형 단순 노무로 흡수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고령 인력의 생산성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축적한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개인의 손실을 넘어 국가적 손실”이라며 “숙련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경력 연장형 일자리와 중장년층의 전직 시장을 함께 키우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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