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축구팬들을 설레게 했던 월드컵이 끝났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아직 월드컵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2년처럼 ‘엄청난’ 성적 덕분에 여운을 즐기는 것이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 반대다. 생각지 못한 조별리그 탈락에 따른 책임 소재를 밝히느라 축구협회를 넘어 정치권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여러 이슈가 있으나 가장 큰 타깃은 ‘감독’이다. 사실 감독 논란은 2024년 감독 선임 때부터 있었다. 제대로 된 검증이나 비교 없이 ‘제 식구 감싸기’로 감독을 선정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기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으로 증명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과거의 모든 것들이 다시 소환되며 전 국민적 이슈가 돼 버렸다.
월드컵 경기는 끝났지만 여전히 뉴스의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 축구팀 사건을 보면서, 그리고 그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는 홍명보 감독을 떠올리면서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홍명보 감독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었던 1990년부터 국가대표를 지냈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에 4회 연속 출전했다. 앞서 언급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 때 주장 완장을 찼고 브론즈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역시 아시아 선수 최초였다. 이후 선수 홍명보가 아닌 ‘감독’으로 2012년 올림픽에 참여했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동메달을 따는 성과도 이뤘다. 여기까지의 이력만 보면 홍명보라는 사람은 성공한 축구인이다.
그 성공 덕분일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감독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당시에 1무 2패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돌아와야만 했고, 공항에서 축구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임기가 남아 있었음에도 물러나야 했다. 그러다 K리그 감독으로 부임해 2022년과 2023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덕분에 K리그 감독상도 그의 몫이었다. 그러다 2024년 시즌 도중 K리그 감독직을 내려 놓고 다시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그 결과가 이번 월드컵이다.
‘홍명보’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성공과 실패를 겪어온 ‘리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그의 축구 인생에서 굵직한 연보를 훑었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을 발견했다. 실패는 ‘두 번의 월드컵 감독’에서만 겪었다는 사실이다.
다 아는 얘기 아니냐고? 중요한 건 이 리더의 ‘성공’도 함께 보는 것이다. 그 리더를 ‘무능하다’라고 치부하기엔 그에게 꽤 좋은 성과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월드컵에선 두 번이나 실패한 감독이 됐을까?
이 지점에서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보였다. 바로 ‘자기 인식’이다. 나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올림픽에서 ‘최초’의 성과를 올린 뒤에 들어온 국가대표팀 감독 제안,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실패, 그리고 다시 프로팀을 맡아 절치부심한 끝에 성공을 거뒀다. 그 이후에 다시 대표팀 감독 제안을 받았으니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게 ‘자기 인식’이 잘 되지 않은 리더의 한계다.
월드컵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축구인들이 모여 ‘전쟁’을 치르는 공간이다. 선수들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출전국들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최고 수준의 감독을 ‘모셔와서’ 팀을 만드는 대회다. 현대 축구에 걸맞은 새로운 전술이 소개되기도 하는 등 축구인의 ‘꿈의 무대’인 셈이다. 23세 이하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올림픽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한국프로축구리그는 유럽 빅리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 차이가 나는 리그다. 여기서 통했던 전략이, 이때의 성공 경험이 월드컵에서도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결국 리더는 내가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등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만 과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럼 자기 인식을 위해 리더에게 필요한 건 뭘까. 주변에 나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두는 것이다. 선배일 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의 말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리더로서 챙겨야 하는데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 내 영향력을 검증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으려면 두 가지를 챙겨야 한다. 하나는 ‘구체적’ 질문이다. “요즘 나 어떤 것 같나요”라고 물으면 제대로 된 반응을 들을 수 없다. “나는 지금 XX 업무에 관심을 쏟고 있는데 혹시 놓치고 있는 게 있을까요”처럼 이슈를 갖고 묻는 게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피드백 내용에 대한 ‘반응’이다. 상대에게서 ‘솔직한’ 답을 듣게 되면, 다시 말해 ‘잘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들으면 변명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억울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한 두 번 반복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나에게 솔직한 의견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고맙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만약 주변에 피드백 해줄 만한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땐 ‘나’ 스스로 계속 되물어야 한다. 리더로서 나의 행동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물으며 성찰할 수도 있고, 전과 다르게 해서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스스로 격려하는 피드백도 필요하다. 이때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리더의 모습을 비교치로 가지고 있으면 좋다. 축구 이야기를 한 김에 또 한 명의 대한민국 축구 스타 박지성에게 ‘감독을 왜 안 하냐’고 물었는데 이렇게 말을 했다. “본인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훌륭한 감독님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가진 선수들을 동기부여하는 자질이 나에게는 없는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매번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어떤 선택이든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타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라면 내 선택의 파급력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를 아는 것이다.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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