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된 거냐."길거리 한복판에서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좀비'처럼 멈춰 선 남성.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영상들은 조회수 3000만회를 웃돌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마약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잇따랐다. 경찰 조사 결과 실제 이 남성은 필로폰 간이시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자택에서도 필로폰이 발견됐다. 현재 그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불린 대한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마약에 취한 듯한 사람을 목격했다는 영상과 게시글이 각종 SNS,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다. 이에 누리꾼들은 "미국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마약에 찌들어 있냐", "나라 꼴이 잘 돌아간다", "정부는 당장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하라"며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여기에 다음달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검사의 일부 마약범죄 직접·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서 수사 공백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공소청 내 마약 전담 검사와 수사기관 간 협업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장과 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범죄는 지표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1만3353명으로 2021년(1만626명) 대비 25.6% 늘었다.수사기관의 마약 감정 의뢰도 급증했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과수의 마약류 감정 의뢰 건수는 2021년 7만7480건에서 2022년 8만9691건, 2023년 12만8161건, 2024년 12만1375건, 2025년 14만1285건으로 늘었다. 2021년 대비 82.3% 증가했다.
공항을 통한 마약류 밀반입도 마찬가지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내 공항 마약류 단속량은 2022년 3만6155g에서 2023년 14만8099g, 2024년 13만9687g, 2025년 27만9455g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17만4734g이 적발돼 이미 2024년 한 해 단속량을 넘어섰으며, 이 추세면 연말에는 지난해 수치를 웃돌 전망이다.
검사 출신인 변호사 A씨는 "검찰에서 송치받은 피의자가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 의심되는데 이를 즉시 확인하지 않고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 형태로 내려보내면, 마약류가 소변으로 검출되는 2~3일이 순식간에 지나 확인할 수가 없다"고 우려했다.
비슷한 상황은 문재인 정부 때도 있었다. 당시 검찰 직접수사 축소 방침에 따라 검사의 마약 직접수사 범위를 가액 500만원 이상 마약류 범죄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마약범죄 특별수사팀·특별수사본부의 월평균 직구속 인원은 검사 수사권이 제한되기 전인 2019년 1월~2020년 12월 하루 평균 22.1명에서 수사권이 제한된 2021년 1월~2022년 8월 하루 평균 12.5명으로 43.4% 줄었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검사 수사 개시 범위를 마약 공급범죄 전반으로 넓힌 2022년 9월~2024년 7월에는 24.9명으로 회복했다. 직구속은 불구속 상태로 송치된 피의자를 검찰이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구속기소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사 결과의 차이가 발생하는 배경으로 검찰과 경찰의 기관 특성 차이가 지목된다. 이창온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은 법정에서 수사 결과가 어떻게 판단받는지 피드백을 받을 기회도 없고 법률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복잡한 사건에서 검사와 수사의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약 범죄에 대한 국제 공조 체계에도 혼선이 발생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검사 출신인 변호사 B씨는 "오늘날의 마약 수사는 국제공조 등을 통한 초국경 수사 협력이 필수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동안 법무·검찰을 중심으로 축적한 국제공조는 하루아침에 그 주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상당 기간 공조수사에 많은 불편이나 장애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마약 수사를 둘러싼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임기근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17일 "유관기관 간 협력을 굳건히 하고 합동수사도 빈틈없이 진행해 국민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수사기관에 전담 조직을 확충하고, 공소청에 마약 전담 검사를 둬 수사기관의 지도·조언 요청이 있을 때 신속하게 의견을 제시해 수사를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이다.다만 이에 대해서도 현장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부장검사 C씨는 "지휘와 협력의 차이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누구 의견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느냐에 있다"며 "예전에는 검사 의견이 관철됐지만 협력 관계에서는 경찰이 검사 의견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검사가 의견을 내도 경찰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의미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마약 범죄를 전담하는 별도 기관 신설과 관련한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은 재임 중이던 지난달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마약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야권도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 마약 범죄 전담 기관 신설 필요성을 피력했다.
다만 학계에서는 개정 형사소송법 체계에서 수사·기소를 함께 하는 이른바 '마약청' 신설에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 교수는 "분과별 전문기구가 수사·기소를 함께 하는 형태로 쪼개지면 공수처가 기소권 확대를 요구하듯 조세·공정거래·관세 분야에서도 기소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번질 것"이라며 "필요할 때마다 덧붙이지 말고 우리에게 맞는 사법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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