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화면 속 생성형 AI에서 현실 공간을 움직이는 피지컬AI로 이동하고 있다. 로봇은 공장과 물류 현장을 넘어 가정, 교육, 돌봄, 공연장과 도시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피지컬 AI 시대 중요한 질문은 로봇이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로봇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어떤 가치와 문화를 담을 것인지 함께 물어야 한다.글로벌 로봇 경쟁은 성능과 생산성, 자본 규모를 중심으로 펼쳐져 왔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투자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기술이 사회 안으로 들어오면 경쟁의 기준은 달라진다. 안전성과 신뢰는 물론 친밀감, 서사, 감정적 수용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기술만으로는 일상에 정착하기 어렵다. 피지컬AI 시대에 문화가 핵심 인프라가 되는 이유다.
여기서 K컬처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K팝과 드라마, 영화, 웹툰은 상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악과 이야기, 플랫폼과 팬덤을 연결해 세계인이 함께 참여하는 경험을 창출했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안무를 따라 하고 콘텐츠를 재해석하며 의미를 생산했다. 이 같은 참여와 관계의 역량 및 경험은 로봇을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함께 소통하는 존재로 바꾸는 자산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실험이 시작됐다. 피지컬AI 엔터테크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지난 7월 UN 산하 ITU의 ‘AI for Good’ 서밋에서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화두로 K팝 로봇 공연을 선보였다. 또 최근 세계평화의 날을 맞아 뉴욕에서 시민과 로봇이 함께하는 플래시몹과 어린이 교감 공연도 펼쳤다. 공연의 핵심 메시지는 ‘AI 시대에 우리는 로봇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였다. 이는 특정 기업을 넘어 한국의 콘텐츠 역량이 피지컬AI의 사회적 의미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몇 차례 공연만으로 새로운 산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발전시키려면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 로봇과 콘텐츠의 결합을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 IP로 발전시켜야 한다. 로봇의 캐릭터와 세계관, 음악과 안무, 관객 참여를 연결한다면 공연과 교육, 관광, 게임으로 확장되는 시장을 조성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공동 창작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과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출해서는 각 사회의 문화와 정서를 담기 어렵다. 현지 창작자와 기술자 및 기업, 교육기관 등이 기획부터 참여하고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 K컬처의 세계화는 한국에서 만들어 보내는 단계를 넘어 세계와 함께 만들고 세계로 나아가는 ‘공진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셋째, 인간 중심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공연장과 교육 현장의 로봇 안전 기준을 정교하게 세우고, 어린이와 관객의 개인정보 및 선택권을 보호해야 한다. 아티스트와 창작자의 권리, 학습 데이터의 정당한 이용 및 보상 체계도 필요하다. 신뢰를 잃은 기술은 문화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피지컬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모든 로봇을 직접 제작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강점은 기술에 음악과 이야기, 관계와 공공적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K컬처가 피지컬AI와 결합할 때 한류는 보는 콘텐츠를 넘어 함께 교감하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을 닮은 로봇만이 아니다. 인간과 더 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로봇이다. 그 해답을 문화의 힘으로 보여주는 것이 피지컬AI 시대 K컬처의 역할이다. 시작은 문화와 기술이 함께 발전하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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