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흑인 배상 요구와 日의 강제징용을 대하는 美의 자세

입력 2023-03-27 07:02  

[특파원시선] 흑인 배상 요구와 日의 강제징용을 대하는 美의 자세

[특파원시선] 흑인 배상 요구와 日의 강제징용을 대하는 美의 자세
美 일부 자치단체서 인종차별 배상 추진…다수 미국인은 반대
美, 한일 강제징용 배상합의에 피해자 언급없이 '환영' 입장 발표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가 노예제와 인종 차별 정책으로 오랫동안 피해를 본 흑인을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논란이다.
특히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의 배상자문위원회가 시의 흑인 주민 1인당 500만달러(약 65억원)를 배상하는 권고안을 내 주목받았다.
캘리포니아는 주 정부 차원에서 흑인 주민이 구조적인 차별로 입은 피해를 조사하고 배상안을 권고할 태스크포스(TF)를 2020년에 구성했으며 TF는 오는 7월 1일까지 최종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샌프란시스코 외에 오클랜드, 로스앤젤레스, 새크라멘토 등 캘리포니아주의 다른 도시도 자체 배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는 과거 미국 사회가 흑인에게서 교육, 취업, 주택 소유 등에 대한 공정한 기회를 박탈한 데서 오늘날 흑인 사회의 높은 실업률과 빈곤, 낮은 교육 수준 등의 문제가 비롯됐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미국 경제가 노예의 값싼 노동력 덕분에 성장했으니 지금이라도 그 후손들에게 배상해야 진정한 인종 간 화합과 역사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1865년 남부 노예주의 토지를 몰수해 해방된 흑인 가족당 농지 40에이커(16만㎡·4만9천평)와 노새 1마리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후임인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약속을 뒤집었고, 자유를 얻었으나 경제적 기반이 없는 흑인은 옛 백인 주인의 농장에서 소작인으로 일하며 가난의 굴레를 벗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몇몇 시민단체와 정치인 등이 배상을 추진했지만, 그때마다 좌절됐고,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다시 동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배상을 지지하는 미국인이 많지는 않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작년 11월 조사에서 미국인의 68%가 노예의 후손에게 토지나 돈 등으로 배상하는 것을 반대했다.
흑인의 77%가 찬성했지만, 백인의 80%와 아시아계의 65%가 반대하는 등 인종에 따라 입장이 극명히 갈렸다.
이처럼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조 바이든 대통령도 적극적이지 않다. 백악관은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배상 문제를 들여다볼 정부 위원회 설립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지만 이후 별 움직임이 없다.



자국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이런 자세를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 합의를 한일관계의 "신기원적인 새 장"이라며 마냥 환영한 게 놀랍지만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일 낸 성명에서 이 합의를 "한일 간 발표"라고만 칭하고 "강제징용"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도 다른 환영 성명에서 "예민한 역사 문제"라고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다.
미국에는 당장 중국을 견제하는 데 협력해야 할 두 동맹이 다시 손을 잡은 게 중요할 뿐 미국이 늘 주창하는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고려는 적어도 공식 입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중요하고 강제징용이 과거 일제 강점기 때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성명에서 이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미국이 연일 중국의 위구르족 강제노동은 맹렬히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 두 강제노동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미국도 역사의 상처를 씻으려면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는 듯하다.
미국은 일본과 전쟁한 2차 대전 때 행정명령 9066호를 발령해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계 미국인 12만명을 구금했으며 1988년에서야 정부가 공식으로 사과하고 생존자당 2만달러를 배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세 차례나 9066호 발령일인 2월 19일을 즈음해 성명을 내고 "미국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시기 중 하나"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성명에서 "위대한 국가들은 가장 괴로운 순간들을 모른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마주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순간들로부터 배워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blueke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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