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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다 헌신짝"…바람난 남편 떠나보낸 아내의 '충격 변신'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025-12-13 00:09:44
썩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야블렌스키는 말년에 류마티스 관절염과 싸우며 고통받았습니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겹쳤습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는 독일에서 전시 활동을 금지당했습니다. 수입이 끊겨 요양 치료비조차 댈 수 없었고, 미국의 후원자에게 도움을 구걸해야 할 정도로 처참한 생활이 이어...
영하 60도, 사체로 벽 쌓고 버텼다…엘리트 교수의 '미친 짓'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025-12-06 00:10:23
모양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레리히의 말년은 불운했습니다. 194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은 레리히의 제자였던 부통령 후보(전 농림부 장관) 헨리 월리스를 공격했고, 레리히와 월리스가 주고받은 ‘비밀 편지’를 폭로하려 했습니다. 월리스는 레리히를 칼같이 ‘손절’한 뒤 “사기꾼”이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 구하려면 침실로 들어와"…'300억 스타'의 기막힌 운명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025-11-21 23:59:31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말년에 그녀의 전성기 아르데코 그림을 재평가하는 바람이 반짝 불기도 했습니다. 은둔 생활을 하던 타마라는 70대에 접어든 나이로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손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결과물은 전성기 작품 특유의 칼 같은 선과 빛나는 색채가 사라진, 초라한 모작(模作)에 불과했습니다....
"차라리 자르고 싶어"…아픔 겪던 30대男, 고통 자초한 이유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025-11-15 00:06:26
이렇게 완성된 그림에는 더없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빛, 행복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앙리 에드몽 크로스(1856~1910)였습니다. 크로스는 평생 잔인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당시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는 불치병이었던 류머티즘(류머티스 관절염) 때문입니다. 합병증인 홍채염 때문에 그의 시력은 계속 약화됐...
얼어붙은 풍경 속, '페카 할로넨'이 본 건 영혼이었다 2025-11-07 09:56:32
제 영감의 원천은 자연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려면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핀란드 단일 국가에 대한 그의 이상주의적 신념은 러시아/소련과의 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졌고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의 정신적 격변은 금욕적인 단순화의 형...
한국의 인상파 화가 임직순이 남긴 '소녀의 빛과 색' 2025-11-03 10:54:04
말년에 그린 ‘설경의 설악산(1992)’은 그의 원숙한 필치가 집약된 작품이다. 힘찬 선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산의 형세와 남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같은 설악산이라 할지라도 유화 완성작과 드로잉이 함께 배치돼 있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임직순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작가인만큼 다채로운 색채의...
'신비주의' 스타 남편…가정폭력 사실 드러나자 '충격'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025-11-01 07:56:29
겁니다. 덕분에 호퍼의 예술은 말년에 접어들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빛, 그림자, 건축이라는 본질적인 요소로 단순화되고 추상화됐지만, 작품의 깊이는 훨씬 깊어졌습니다. 문이 바다로 직접 열리는 ‘바닷가의 방’, ‘식당의 햇빛’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을 묘사한 게...
"나라 망하는데 정치 싸움만"...천재들 외면한 나라의 최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025-09-27 07:18:13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말년에는 정치에서 벗어나 쉬며 수능 등 각종 국어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어부사시사’ 같은 시를 짓기도 했지요. 윤선도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윤두서가 속한 해남 윤씨 집안의 운명은 남인의 운명을 따라갔습니다. 정치 상황이 변하면서 남인이 강해지면 해남 윤씨 집안에도 볕이...
100년 전 新여성, 구투에 저항하다 2025-09-25 16:50:23
묻힌 장소조차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말년에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1951년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마저도 설이 분분하다. 시대가 김명순을 학대했다. 김명순은 시 ‘유언’을 통해 말했다. “죠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할 때/ 개천가에 곡구러젓든지 들에 피 뽑앗든지/ 죽은 시체에게...
살아서는 번민했고 죽어서는 불멸했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2025-09-16 17:12:48
불과했다. 서랍에서 발견된 유고시 1800편 그의 말년은 궁핍했다. 식구는 많은데 출판사의 파산으로 인세도 못 받고 빚만 늘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세관에 일자리를 얻어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그사이에 두 아들이 자살하거나 객사하는 아픔을 당했다. 작가로서는 완전히 잊히다시피 했다. 1891년 72세로 세상을 떴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