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전 11시 서울 홍익대 공대 앞. 헌혈버스 한 대가 멈춰 서 있었지만, 30분 동안 버스 문을 드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버스 앞에는 기념품을 평소의 3배로 제공한다는 ‘1+1+1’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지만, 곁을 지나는 학생들은 발걸음을 재촉할 뿐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았다. 현장 관계자는 “연휴를 지나면서 혈액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참여가 저조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헌혈에 참여하는 국민이 10년 새 25% 줄면서 혈액 수급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상품권 지급과 공공시설 할인 등 각종 혜택을 늘리고 있지만 헌혈자 감소세를 막지 못해 기존 헌혈자들의 반복 참여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혈액 보유량이 적정 수준을 밑도는 날이 이어지면서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헌혈자를 구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현재 혈액 공급은 남은 헌혈자들이 더 자주 팔을 걷어붙여 공급을 떠받치는 구조로 유지되고 있다. 헌혈자 한 명의 연평균 헌혈 횟수가 1.85건에서 2.27건으로 늘면서 총 헌혈실적은 2015년 308만2918건에서 지난해 283만9632건으로 7.9% 감소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인당 헌혈실적은 2005년 이후 최대치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다회 헌혈자 예우와 군 모집병 가산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헌혈 1회당 1만~2만원 상당의 상품권·지역화폐를 지급하거나 공공시설 이용료를 깎아주는 추세다. 하지만 혜택 확대에도 참여 기반이 축소되면서 일회성 인센티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헌혈이 10~20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청년 인구 감소는 앞으로 혈액 확보를 더 어렵게 할 요인으로 꼽힌다. 중장년층까지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헌혈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헌혈 가능 연령 상한을 현행 69세에서 74세로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혈액 확보의 부담은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번졌다. 특정 환자의 수혈을 위해 지인이 직접 헌혈에 나서는 ‘지정헌혈’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까지 집계된 지정헌혈 건수는 3만5326건으로 지난해 연간 건수(1만7454건)를 훌쩍 넘어섰다.
특히 혈소판은 보관 기간이 5일가량으로 짧아 연휴 등으로 헌혈이 며칠만 줄어도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백혈병이나 조혈모세포이식 환자는 필요한 시기에 혈소판을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남편이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A씨는 최근 병원으로부터 혈소판이 부족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2~3일에 한 번씩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개천절 연휴로 헌혈자가 줄면 혈소판 지정헌혈자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과 격오지에 있는 병원은 혈액 수급에 더욱 애를 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병원은 자체 혈액은행에 통상 3~5일분의 혈액을 보관한다. 대한적십자사도 대형병원에 주기적으로 혈액을 공급한다. 하지만 중소병원은 충분한 재고를 상시 확보하기 어렵다. 울릉도 등 격오지는 혈액 확보와 운송에 제약이 더 크다. 헌혈 참여를 늘리는 동시에 확보한 혈액이 필요한 병원과 환자에게 제때 도착하도록 유통·배분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덕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환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보호자가 다시 헌혈자까지 직접 구해야 한다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연휴처럼 혈액 수급이 어려운 시기에 혜택을 늘리고 격오지 등 공급이 취약한 지역에 드론으로 혈액을 운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진영기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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