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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흥운동서 패한 유민들 대마도에 방어기지 구축 2021-01-18 09:01:07
(윤명철 《일본기행》, 1989년) 애증의 한·대마도 관계7세기 중엽 동아시아 역학관계와 한민족의 역사 방향을 바꾼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이 발생하면서 대마도의 운명은 달라졌다. 661년부터 왜국은 부흥운동을 펼치는 백제에 군수물자와 병력을 지원했다. 혈연적·문화적으로 가깝다는 명분과 함께 당나라와 신라의...
효종의 북벌론, 현실성 있었나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1-17 08:28:05
종족과 전투를 벌였다(윤명철, 《유라시아 세계와 한민족》). 따라서 헤이룽강 일대에서 청과 러시아의 충돌은 시간문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은 청나라와 전면전은 고사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는 전술적인 공격조차 불가능했다. 더구나 명에서 청으로 바뀌었을 뿐 모화사상은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에 절대권력을...
병자호란으로 버림받은 조선 백성의 눈물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1-10 09:24:03
더 탄압하고 가렴주구가 심해지면서 조선은 붕괴의 길로 치달았다. 때때로 가정해 본다. 만약,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붕괴했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발전과 백성들의 삶은 더 유리하게 변하지 않았을까? 백성을 버리면 정권은 물론이고, 국가도 붕괴하고, 멸망하는 것이 ‘정의’이고 ‘순리’가 아닌가? 윤명철
새해가 밝았다…한국인의 '본모습' 찾아야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1-03 08:00:04
결과이다(윤명철, 《역사전쟁》) . 우리의 정체성은 청동기 시대가 성숙할 무렵인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 ‘원형’이 생성됐다. 이후 시대의 변화, 공간의 이동, 외부의 강력한 충격과 내부의 큰 사건들로 인해 약간의 ‘변형’들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혈연공동체, 언어공동체, 생활공동체였고, 수백년씩 유지한...
임진왜란서 교훈 못 얻은 조선…정묘·병자호란으로 신음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12-27 08:00:08
그들의 행적은 용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윤명철, 《한국해양사》). 조선의 위정자들은 왜 전쟁이 곧 발발할 것을 몰랐을까? 중국과 만주 일대에서 질서가 재편되고, 정복국가가 탄생할 때는 예외 없이 한국지역을 공격했다. ‘고수 전쟁’ ‘고당 전쟁’ ‘여요 전쟁’, ‘여원 전쟁’, ‘조청 전쟁’ ‘6.25 전쟁’이...
탐라, 대륙과 해양 연결하는 물류망 거점 역할 2020-12-21 09:00:06
윤명철, 《해양활동과 국제항로의 이해》). ‘주호국’ 국명으로 역사서에 첫 등장역사시대에 들어오면 《삼국지》 동이전 ‘한’ 조항에 “마한의 서해상에 주호국이 있었는데…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韓)·중(中)에 와서 매매한다…”는 기록에서 국명이 처음 나타났다. 남쪽 바다에서 선박을 능숙하게 다루며 무역에...
조선통신사가 외면한 세계 속의 일본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12-20 08:30:02
보고서였다.(윤명철, 《한민족의 해양활동 이야기 2》) 일본의 막부는 세계가 해양의 시대로 변모했고, 해양력 강화는 국가의 부강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열심히 학습했다. 반면 두 번의 참혹한 전화를 겪고 난 후에도 통신사들은 세계정세는 커녕 일본이 개량된 배를 운영하면서 아시아의...
일본 대마국과 해양·무역권 다퉜던 우산국…신라, 우산국 확보 힘입어 북진정책 '성공' 2020-12-14 09:00:13
영향력을 확장했었다(윤명철, 《우산국, 울릉도와 독도의 나라》).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 기억해주세요 우산국은 단순한 어민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동해의 해양소국이었을 것이다. 해양전략적인 가치가 컸던 우산국을 복속한 이후 신라는 동해 지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했고, 진흥왕은...
귀중한 기회 놓친 조선통신사의 행적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12-13 09:06:17
신유한의 '해유록' 등에도 있다(윤명철, 《동아지중해와 일본 고대사》). 1711년의 통신사는 이 해역에서 아난타(인도)상인들을 만나 관찰한 내용을 기록했다. 한려수도만큼 아름다운 풍광에 대해 조선통신사들도 감탄하면서 뛰어난 문학작품들을 남겼다. 통신사들의 일본 인식과 행로조선통신사 행사는 두 나...
임진왜란으로 눈물 흘린 조선 포로의 삶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12-06 14:18:25
(윤명철, 《한민족 해양활동 이야기》 2). 기술자로 정착한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은 다도의 융성과 무역 상품용으로 수준 높은 도자기의 필요성이 컸다. 조직적으로 끌려온 도공들은 혼슈 남쪽의 하기(萩), 규슈의 가라쯔(唐津), 아리타(有田), 사쓰마(薩摩) 등에서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생산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